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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s 흥미진진한 놀이/# 스크린 이야기

# 미즈메디병원이 함께하는 엄마들의 수다


누가 아줌마를 만들었는가!

연극 '엄마들의 수다'는 출산과 동시에 생활이 바뀌어버린 엄마들이 나온다. 젊었을 때는 작은 잔에 든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창밖으로 내리는 소나기에 마음을 태웠다. 공연과 전시는 감성을 만족시키기 위한 문화 필수 코스였으며 책도 많이 읽었다. 남자들 앞에서는 새침하게 아닌 척, 예쁜 척 등 온갖 척을 다해가며 도도하게 굴었다. 모두 결혼하기 전, 출산하기 전의 일이다. 임신으로 인해 부풀었다고 굳게 믿은 뱃살이 출산 후에도 그대로다. 아이 키운다고 바빠 죽겠는데 살도 안 빠진다. 너무 바빠 살이 빠질 틈도 없다. 분명 '사람과 결혼' 했는데 눈떠보니 술 퍼먹고 네 발로 기어들어오는 '개와 살고' 있다. 넓은 곳만 가면 뛰어다니느라 정신없는 아이를 따라 마음에도 없는 숨바꼭질을 해 짜증이 나지만 아이가 기죽어 들어오는 모습을 보면 정신이 번쩍 든다. 파마머리의 곱슬 만큼 할 말이 많아졌고 부푼 살만큼 용기도 많아졌다. 세상은 그녀들을 보고 아줌마라고 부른다. 누가 이 아줌마들을 만들었는가, 바로 남편이고 자식이다. 연극 '엄마들의 수다'는 여자들이 아줌마가 된 사연을 코믹하게 그려낸다. 그러나 그 속에는 뼈가 있다. 이 날카로운 뼈에 가장 많이 찔릴 사람은 바로 남편이다. 그리고 엄마가 있는 모든 자식들이다. 유모차계의 포르쉐를 끌고 내 아이에게만은 좋은 것을 해주겠다는 그 사치는 사치로 끝나기에 섭섭한 무언가 있다. 과자의 새 봉지를 뜯어 마지막까지 다 먹어본 게 언제였던가. 누구보다 성실하며 사랑으로 들끓는 이들의 이름이 아줌마, 엄마들이다.

엄마들의 수다, 그래서?

수다는 인생의 진지한 탐구가 아닌 하소연 혹은 속 풀이다. 하고나면 속이 시원해지는 소화제와 같다. 연극 '엄마들의 수다'는 이 일회성 수다와 닮았다. 진한 여운보다는 공연을 보는 동안 아줌마들의 속을 후련하게 긁어준다. 엄마들이 펼치는 수다 한판을 보고 있자면 함께 수다를 떨고 있는 기분이다. 그들의 이야기가 내 이야기고 내 이야기가 그들의 이야기다. 무엇보다 능청스러운 배우들의 엄마 연기는 통쾌하다.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 그들의 일상을 재현하는 것 같다. 그동안 드라마, 연극, 영화, 책 등에서 그리던 한국 어머니의 이미지와는 조금 다르다. 희생의 상징 '어머니' 대신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면서도 때로는 귀찮아하며 주위 사람들에게 푸념을 늘어놓는 한 인간으로서의 엄마를 그린다. 어느새 슈퍼우먼이 된 엄마들과 함께하는 동안에는 슬쩍 눈물도 나온다. 자식이라고 다 키워낸 우리 꼴이 엄마들의 정성에 비해 턱없이 철없기 때문이다. 연극 '엄마들의 수다'가 자식을 넘어 궁극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결국 자신들의 '엄마'다. 집에서 혼자 자식과 남편을 기다리는 시간이 길고 고독해도, 내가 한때 찬란하게 빛나는 기적을 선물한 자식이었단 걸 생각하면 위안이 된다. 우리 엄마도 나를 보며 웃었고 다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점점 험해지는 세상에 쉬이 내보내기가 겁나 안절부절 못하기도 했다. 아프기라도 하면 더욱 애가 탔다. 연극 '엄마들의 수다'의 끝에는 엄마가 되어서야 알게 된 우리들의 엄마가 있다.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서 뭐가 그렇게 힘드냐'는 남편들의 핀잔에 일침을 가할 수 있는 연극이 바로 '엄마들의 수다'다. 엄마들끼리 봐도 좋다. 그러나 누구보다 남편, 혹은 자식과 함께 간다면 '엄마'로서의 고충이 그동안 얼마나 컸는지 구구절절 이야기하지 않아도 된다. 무대 위에서 다른 엄마들이 다 이야기해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