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세상살이

# [한국에살다보니]아침공기가 맛있어요_호사카유지


일본인이면서 한국으로 귀화하고 독도는 한국땅이라고 주장하는 호사카 유지의 삶을 뉴스에서 보게되었는데
호사카 유지씨와 함께 논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있다고 한다.
본토 한국인이 아닌 호사카 유지씨도 이렇게 독도를 한국땅이라고 주장하는데
우리 모두도 독도에대해 좀더 애착심을 갖고 알아갔으면 합니다.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노래처럼~~수십년동안 우리가 불러온 독도를 지키는 일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2002년의 대한민국의 붉은 물결처럼 힘을 모을때입니다.

〈호사카 유지/ 세종대교수·일본학〉

나는 2003년 7월 한국인으로 귀화 허가를 받았다. (귀화의 동기에 대해서는 여러 지면을 통해 이미 알렸으므로 여기서는 귀화 신청에서부터 주민등록증을 받을 때까지 과정에 관해 쓰려 한다.) 귀화를 결심한 나는 먼저 내 한국 성명을 짓기로 했다. 고민한 끝에 성은 ‘호’로, 이름은 ‘사카’로 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한자를 찾아보니 ‘카’자가 없어서 발음이 비슷한 ‘삭하’로 하면 어떻겠느냐고 권유하는 분이 계셔서 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내 한국 이름은 지어졌다. 그런데 그것을 주변 사람들에게 알렸더니 모두 반대했다. 그 이름을 보면 금방 중국 출신임을 연상할 것이라는 얘기였다. 출입국 관리사무소의 귀화 신청 창구에서는 “이름은 가정법원에서 금방 바꿀 수 있으니 나중에 바꾸라”고 일러주었다. 이리하여 나는 당분간은 일본 이름을 그대로 쓰기로 했다.

그 때 경이로우면서도 무척이나 기뻤던 일은 반강제적으로 한국적인 이름을 짓게 하는 일이 한국에는 없다는 점이었다. 나는 일본 제국주의시대 연구자여서 창씨개명도 연구했다. 일본에서는 외국인이 귀화할 때면 지금도 일본식 이름으로 바꾸도록 ‘지도한다’고 들었기 때문에 한국의 이런 점에 더욱 친근감이 들었다. 귀화 준비를 하는 동안 법무부에서 인터뷰도 받고 귀화시험도 치렀다. 시험을 위해 나는 한국어와 한국사 공부를 열심히 했다. 애국가도 3절까지 외웠다. 귀화시험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법무부에서 마지막 인터뷰를 받던 날 나는 많은 중국동포들에 섞여 귀화에 관한 주의사항을 들었다. 그날 중국동포는 500명쯤이었는데 그들을 제외한 외국인은 나를 포함해 4~5명이었다. 마지막 인터뷰가 끝나자 면접관은 내게 “한국 국적을 취득하신 것을 축하드린다”고 말해주었다. 순간 감개무량했다. 귀하 허가 통지를 받은 나는 일본 국적 포기확인서를 받으러 일본으로 건너갔다.

본적이 있는 도쿄 이타바시(板橋) 구청을 방문하여 관련서류를 작성했다. 그 때 비치되어 있는 소책자에서 ‘귀화하는 사람에게 알리는 사항’이라는 페이지를 우연히 보았다. 거기에는 그동안 말로만 듣던 내용, 즉 ‘귀화한 외국인을 일본식 씨명을 갖도록 지도할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자세한 지도방법들도 설명되어 있었다. 일본식 씨명(氏名·성명)을 만든 것은 법이 아니라 ‘지도’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강(姜)자나 최(崔)자는 일본에선 성으로 쓸 수 없는 한자였다. 그러므로 어쩔 수 없이 일본에 귀화하는 재일 한국인들은 일본 성명을 만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일본이 실제로 현대판 창씨개명을 실시하고 있다는 것을 눈으로 직접 확인한 나는 적지 않게 놀랐다. 이에 비하면 한국은 사람을 우선시하며 본인의 권리나 의사를 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국가임이 느껴졌다. 일본에서 확인서를 받아 나는 서류를 거주지 동사무소에 제출하고 주민등록증을 교부받았고 한 달 후 법적으로 완전한 한국인이 되었다.

귀화한 후 나는 한국의 아침공기가 달라졌다고 느끼고 있다. 내 몸에 감기는 느낌이라고 할까, 맛이 있다고 할까. 한국 국적을 취득하기 전과 후는 사뭇 달랐다. 누구든 자신이 사는 곳의 아침공기를 피부로 느낄 수 있고 편안함이 느껴진다면 진정으로 그곳 사람이라는 의미이며, 내가 진짜 한국인이 되었다는 의미일 것이다.